2009년 01월 14일
Contre-Réforme du 21ème Siècle

그제 밤에는 수도 없는 꿈을 꿨다. 특히 일어나기 직전의 거지같은 꿈은 아직도 생생하다. 나는 꿈 속에서 뜬금 없이 병원에서 일을 하는 직원으로, 일 주일 동안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사람들이 하나같이 호흡 곤란으로 죽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목이 졸리던지, 스스로 목을 매어 죽던지, 산소마스크가 벗겨져 죽는다던지, 혹은 그 기계가 멈춘다던지, 등등. 환자건 의사건 간호사건, 대상은 상관 없다. 일주일 동안 당최 몇 명이 죽었는지 알 수가 없다. 두려움에 압도된 나는 하얗게 질려 집에 돌아와 신발을 후다닥 벗고 현관에서 '엄마!' 하고 크게 외친다. 엄마는 싱글벙글하며 요리를 하는데, 보글거리는 찌개 앞에서 나를 쳐다본다. 그리고 꿈에서 깼다. 아, 이런 그지같은 꿈. 젠장.
어제 오후에 물 마시다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입 안의 물을 다 뿜는 줄 알았다. Notice를 위한 Notice Board를 만들었다며 애들한테 존내 비웃음을 산 부학사장이라는 사람은 그 Notice Board보다도 여전히 엘리베이터 앞을 선호하는 것 같다. 지금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예전에 이웃의 이대에 마담고양이라는 고양이가 매일 같은, '양지 바른' 곳을 항상 선점하는 것과 같이. [혹시라도 누가 오면 이대 애들이 오며 가며 준 간식을 먹고 키운 덩치로 위협하곤 했다는 전설이 있다.] 매주 수요일 10시 간담회? 방 점호? 뭥미. 이런 제길 썩을 !#$%^&....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욕을 하며 독기를 뿜어낸 저녁이다. 심령사진을 찍으면 내 주변에 검은 독기가 가득할 거다. 아, 아침에 꾼 그 재수 없는 꿈은 일종의 déjà vu였단 말인가?! 이런 씨밤바... ;ㅅ;
알 림 공지한 바와 같이 이제 매주 수요일 저녁 10시에는 각층별로 조교의 주관 하에 간담회가 열릴 예정입니다. 이 시간에 모든 입사생들은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 반드시 이 모임에 참석해야만 합니다. 즉, 선택사항이 아니라 의무사항임을 숙지하십시오. 불가피한 경우가 있어 참석을 못할 경우에는 모임 전 층별조교에게 그 사실을 꼭 알려주길 바랍니다. 이 모임의 취지는 층별로 어떤 사람들이 사는지 서로 알고 친교를 나눌 수 있는 소중한 시간과 기회를 얻고자 하는 것입니다. 아울러 이 모임을 통해서 층별로 문제가 되는 사안을 함께 논의해서 함께 지혜로운 해법도 찾았으면 합니다. 이 모임 끝에 층별조교가 각 객실 청소상태를 확인할 것입니다. 2회 연속 간담회 불참석자는 사감 선생님으로부터 직접 청소상태를 점검 받게 될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모두 좋은 날 되길 빕니다! 2009년 1월 13일 화요일 부학사장 배성문 수사 |
이 글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이다: 날 더러 엿 먹으라는 이야기로 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이런... 에지간히도 좋은 날 되겠다.'
나는 이 마지막을 읽고 폭발해서 당장 부모님께 전화를 돌렸다. 나 아마도 일찍 내려갈 것 같다며 길길이 날뛰었다. 당장 짐싸서 내일부로 내려올 수 있으면 내려오라는 화끈한 우리 엄마아빠의 대답- -... 역시 이건 여기서 썩지 말고 집에 일찍 내려가라는 계시다. Holé... 머리 싸매지 말고 집에나 내려갈까.
부학사장이라는 배성문 수사는 굉장히 치밀한 사람이다. 촘촘히 거미줄을 쳐서 이 건물을 장악하겠다는 강력한 의지! 어떤 수사 분을 영입함으로서 자신의 직책 밑에 안정적으로 두 개의 축을 구축한 후 - 물론 그 중 하나의 축은 언제나 위험 요소[매사 두려움에 떨고 있는 그에게 위험요소란 자기에게 조금이라도 위협이 될만한 가능성을 지닌 모든 존재들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잘 꾸며져 있는 옥상을 그가 폐쇄한 이유는 누군가의 자살을 방지하기 위함이라나 뭐래나]를 내재하고 있으므로 자신의 권력으로 무력화 시킨 후, 또 다시 각 층별로 조교를 두어 새끼를 침으로써[?] 전 기숙사의 완벽한 통제를 실현하겠다는 그의 -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 탁월하기 짝이 없는, 하지만 20세 이상의 성인들을 대하기에는 참 유치한 전략 전략.
하림 언니 말을 들으니 굉장히 신기한 것은, 선발된 조교들이라는 사람들이 그가 제시하는 것에 대해 별 말이 없었다는 것.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까지 있는 것 같았다나. 그런데 그 조교들은 다 어디서 데리고 온 거람? 내가 알기로 이들은 자원했거나 수사의 임명으로 조교가 된 것이 대부분이다. 자원은 둘째 치고, 수사가 임의적으로 가깝거나 보기에 마음에 드는 사람을 임명한 것이라면 이것은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조교가 될 권리는 수사에게 있다? 이게 당최 왕권 신수설과 다를 것은 뭐란 말인가? 벨라르미노의 경우, 매년 혹은 매 학기, 대학원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며 공개적으로 조교들을 선발한다. 바쁜 3-4학년들 - 조교들이 주로 3-4학년이라고 들었다 - 에 대한 고급 노동력 착취에 후진적인 비공개 선발까지, 참 대단도 하다.
끊임 없는 감시. 감시, 감시, 또 감시. 냉장고에 있는 음식을 훔쳐가는 범인 하나 제대로 잡을 수 없는 병신 같은 CCTV. 정작 필요한 기능은 수행하지도 못하면서, 복도, 식당, 로비, 엘리베이터 앞 등 우리는 하루에도 수도 없이 CCTV에 찍혀야만 한다. 그리고 카드 출입을 통해서 출입을 하게 되면, 내가 건물에 있는지 없는지 정도는 파악이 되니 참, 기가 막힌 시스템이기도 하지. 아예 모 기업이 한다는 것 처럼, 이왕 돈 쓰는 거 조금 더 써서 출입증에 아예 특수 칩까지 달아서 어디 있는지까지 알아맞춰 보시지? 남의 출입증으로 건물에 드나드는 외부인은 제대로 통제하지도 못하면서, 쓸데없는 통제는 끊임 없이 '생산'해내는 병신 같은 곤자가 국제학사의 시스템. ['1984'라는 역작을 쓴 George Orwell, 사랑해요!]
나는 벨라르미노가 참 싫었다. 4인 1실에, 햇볕도 잘 들어오지 않는 우울하기만 한 어두침침한 방. 점호에, 통금에, 자유로운 영혼[?]인 나는 정말이지 2년 동안 죽을 것 같았지만 거기에 반발하기가 힘들었다. 왜냐하면 이미 정해진, 논리적으로도 그리 어긋날 것이 없으며 그 적용이 너무나도 공정하기만 한 원칙들이었기 때문이다. 벨라르미노는 엄격하기는 했지만, 어떤 일을 시행할 때에는 원칙이라는 것이 존재했다. 이렇게 부학사장이라는 사람 마음대로 뭔가가 뚝딱 생기고 없어지고 하는 일 같은 것들이 반복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물론, 인정한다. 첫 해라서 보완 사항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그렇지만 날치기도 이런 날치기가 없다. 이런 것이 부학사장이라는 사람이 말하던 가톨릭적 가치이고 한국적 방식이라면, 나는 학교를 자퇴하고 국적을 갈아치울 것이다.
이제부터 어떻게 할 거냐고? 따르지 않는다. 그 따위 간담회 한 번 안 간다고 해서 세상이 무너지는 것도 아닌데. 이런 이상한 간담회 따위에 참여하려고 들어온 것이 아니다. 내가 '곤자가 국제학사'라는 곳을 들어올 때한 에는 쓸데없는 타인의 참견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선택한 것인데,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자꾸 벌어진다면 여기에 단 1초도 더 머무르고 싶은 생각이 없다. 보고 싶은 사람들도 그리울 풍경들도 많겠지만, 어차피 떠나야 할텐데 조금 일찍 떠난다고 달라질 게 무엇이 있겠는가. 다만 내가 교환학생 준비 및 설 연휴를 빌미로 이렇게 비겁하게 도망가는 것에 대한 자책이 마음 한 켠에 크게 남을 뿐이다.
이 사태를 통해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나는 여태까지 곤자가의 구성원으로서 도리를 다했는가? 이 질문에 나는 자신 있게[!] NO라고 대답할 수 있다. 나는 관심이 없었다. 기숙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권력 앞에 빌빌대며 부학사장을 비롯한 각종 타이틀에 죽고 못사는 사람이 무슨 말을 지껄였는지, Angelus라는 - 봉사활동 동아리로 시작해 그의 친위대 양성소로 변질된 - 학사 내 단체를 통하여 무슨 일들을 하는지. 나 한 사람이, 또 그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조금만 더 책임자의 이런 병신같고 후진적인 기숙사 운영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해결책을 제시했더라면, 우리 스스로와 다른 많은 이들의 권리가 이렇게 어이 없이 짓밟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민주 정치란 중요한 것인가보다. 학과 공부 회의 갖지 말고 열심히 해야지 -,.-...]
16세기 종교개혁에 대하여, 예수회는 부패하고 타락한 로마 가톨릭 교회를 쇄신하기 위하여 훗날 Contre-Réforme이라고 불리우는 움직임에 합류하였다. 오늘날, 그러한 예수회라는 수도회의 수사라는 그는 타인의 권리를, 빛나는 '부학사장' 타이틀을 자랑스럽게 달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을 거두어준 예수회의 눈을 가리면서 철저히 짓밟고 있다. [여러 가지 사건들을 통해 다시 한 번,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만이 진실이 아님을 마음에 새기게 된다.] 자유롭고 활기차던 곤자가 국제학사에 선배들의 것과는 사뭇 다른 의미의 Contre-Réforme을 실현하고 있는 배성문 수사, 떠날 사람은 내가 아니라 그 사람이다.
# by | 2009/01/14 23:32 | Summa Cum Laude | 트랙백 | 덧글(5)



